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산이나 강 등 자연에는 언어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에 의존하면 자연과 교류할 수 없다. 자연은 하나의 신비이다. 자연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 생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시에 더 가깝다. 자연은 하나의 신호이면 문이다. 나타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들을 수 있을 때 자연은 말한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무가 참으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나무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거기에 말없는 메시지가 있다. - 김상대 (아주대 명예교수) | |||
말 없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말이 없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오직 같은 것만이 같은 것을 들을 수 있고 같은 것만이 같은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나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무와 소통하며, 강물에서 놀 때 단순히 즐기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 말고 강과 일체가 되면 수많은 신호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온(communion)이다. 이는 영적인 교섭이다.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실로 어질고 지혜로운 이들이다.
선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구도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다. 길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고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나 길의 막바지에 도달할 때 강은 다시 강이 되고 산은 다시 산이 된다.” 이렇게 되어야한다. 도가 높은 스승들이 혹은 물을 좋아하고 혹은 산을 좋아하는 것은 이 마지막 단계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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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지혜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다. 대자연과 만날 때 우리는 보다 건강해진다. 산에 오르고 있을 때는 생기가 넘치지만 단순히 기계와 함께 지내고 있을 때는 생기가 없어진다. 나무들과 함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생기가 넘친다. 또한 넓은 바다 앞에 설 때도 우리는 생기가 넘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생기가 넘칠 때 반드시 행복을 느낀다.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며, 자연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무의 친구가 되고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친구가 된다. 존재계 전체와 친구가 된다. 그럼으로써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삶이 친밀감과 사랑으로 가득해진다. 삶은 작은 연못이 아니고 대양같이 광활하다. 삶은 나와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존재계 전체가 우리의 가족이 된다. 만일 우리의 가슴이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지 않는다면 삶은 그만큼 작아질 것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인간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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