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음악

[스크랩] Georges Moustaki - Ma Solitude

heatingkim 2015. 1. 10. 16:11


 


Georges Moustaki - Ma Solitude (나의 고독).

 

언제나 함께 하였지
그래서 고독은 마치 친구처럼,
친숙한 습관처럼 되었어

고독은 그림자처럼 친숙하게
나를 따라다녔지
내가 가는 곳은 어디나 따라다녔어

이제 난 외톨이가 아니야
왜냐하면 고독이 나와 함께 있으니까

고독은 내 침대에 나와함께 누워
내 공간을 채우지
그리고 우리는 긴 밤을 단 둘이
마주보며 지내지
고독이 어디론가 가버릴지도 몰라

난 고독을 좋아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고독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

심지어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도
나는 가끔 고독을 버리려고 했지만
고독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어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택한다 하더라도
고독은 끝내
나의 동반자가 되어 줄거야
Pour avoir si souvent dormi
Avec ma solitude
Je m'en suis fait presqu'une amie
Une douce habitude
Ell' ne me quitte pas d'un pas
Fidele comme une ombre
Elle m'a suivi ca et la
Aux quatre coins du mond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Quand elle est au creux de mon lit
Elle prend toute la place
Et nous passons de longues nuits
Tous les deux face a face
Je ne sais vraiment pas jusqu'ou
Ira cette complice
Faudra-t-il que j'y prenne gout
Ou que je reagiss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Par elle, j'ai autant appris
Que j'ai verse de larmes
Si parfois je la repudie
Jamais elle ne desarme
Et si je prefere l'amour
D'une autre courtisane
Elle sera a mon dernier jour
Ma derniere compagn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Georges Moustaki 


   

 

그리스 출신의 샹송 가수 조르주 무스타키가
나의 고독(Ma Solitude)을 처음 노래한 건 1968년이었다.
"그토록 숱한 밤을 함께 했기에 고독은 나의 친구며달콤한 습관이 되었다네,
 고독은 충실한 그림자처럼 한 발짝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아 이 세상 어디든 날 따라다녔다네."

이집트 태생의 그리스인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이방인들 틈에서 외롭게 살아온 그였기에 고독과 함께라면 결코 외롭지 않다며 현대인들의 고독감을 달래준 덕에 그는 일약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됐다. 무스타키는 분명 샹송을 노래하고 있지만, 정작 출생지는 프랑스가 아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이다. 그의 부친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프랑스 서적을 취급하는 큰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책방이 가지는 문화적 분위기나 책방을 드나드는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교양과 예술적 기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1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기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기타를 마스터했고, 이 무렵에는 부친의 수입 덕에 비교적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13세 때에 처음 접한 프랑스 여행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프랑스 대학 1차 시험에 합격하여 두 번째로 프랑스를 방문하고 이집트로 돌아온 후 아들이 훌륭한 건축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던 아버지를 설득해 결혼한 자신의 누나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를 떠돌며 여러 사람들과 교분을 넓히면서 샹송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다가 한 고급 캬바레에서 우연히 조르주 브라상드의 노래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작곡생활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53년 당시 신인이었던 자크 드와이앙의 노래를 듣고는 그에게 노래를 주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워 싸구려 호텔 바텐더 등으로 일하다 20세에 한 결혼도 곧 실패하고 말았다. 타고난 방랑벽으로 인해 작가 친구를 따라 벨기에의 브뤼셀로 떠나 프랑스로 돌아올 여비도 없이 기타를 들고 술집을 전전하다 간신히 술집 한 곳과 계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무스타키가 샹송가수로 태어나게 된 최초의 동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이 점차 알려지게 되면서 샹송의 전설이라는 에디뜨 삐아프도 만나게 되었고, 무스타키를 처음 보았을 때 그에게서 받은 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던 삐아프가 오히려 무스타키가 만든 <에덴 블루스>와 <미롤르>를 발표하면서 샹송계에 점차 조르즈 무스타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67년, 여성가수 피아 콜롬보에게 준 곡이 대 히트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도 2년이 넘도록 히트차트를 누비는 등 대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이후 발표한 감성적 우수가 깃든 여러 곡의 노래들이 그때마다 히트하는 행운이 뒤따랐다.
 
불우하고도 어려웠던 시간들 속에서 얻어진 인간적 고독과 연민을 잘 추스려 시적인 샹송으로 승화시키는 인물로 사랑받고 있는 그는 지난 95년 내한공연을 가져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들을 선사하기도 했다. 시인 랭보와 보들레르 베를레느를 좋아하는 그는 지금도 프랑스 세느강변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으면 손수 커피를 끓여 대접하는 자상한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쉘브르
글쓴이 : 시정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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