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욜로는 미국의 인기 래퍼 드레이크가 2011년 발표한 음반에 등장한 단어로, 앨범 'Take Care'에 실린 보너스 트랙 'The Motto'가 빌보드 차트 14위에 오르면서 그 노래의 가사인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가 떠올랐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살아라'라는 의미자 재조명 되면서 젊은층이 즐겨 쓰는 유행어가 됐다. 실제로 해외에 배낭여행객이 주로 모이는 게스트하우스에는 '헬로(Hello)'나 '굿럭(Good Luck)' 대신 ‘욜로’ 인사가 유행하고 있다.
오바마
작년 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 케어'의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2분짜리 영상에 이 단어가 등장한다. 정책을 알리기 위해 대통령이 스스로 셀카봉을 들고 코믹한 표정을 지으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연출하다가 마지막에 오바마는 'Yolo, man'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 영상에서 욜로는 한 번뿐인 당신의 인생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후 미국에서 '욜로'라는 말이 다시 한 번 화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에서 처음 등장했다. 배우 류준열이 홀로 아프리카를 여행 중인 한 금발의 여성에게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하자 그녀가 "욜로(Y.O.L.O)"라고 화답했다는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 이후 '무의미하게 써버린 어제를 후회하는 대신 오늘을 온전하게 열심히 산다'는 의미로 자주 한국에서도 욜로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현재를 살자'는 의미의 말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인류는 늘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살아온 것이 틀림없다.
"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 - 탈무드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다. 당신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당신이 이 순간을 놓친다면 결국 삶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 석가모니
카르페디엠 [carpe diem]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 영어로는 'Seize the day' 또는 'Pluck the day'로 번역되는 라틴어(語)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이 말을 외치면서 유명해졌다. 영화에서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사토리 세대 [さとり世代]
일본어로 '달관'을 의미하는 '사토리' 세대는 덜 벌고 덜 쓰고 덜 일해도 행복하다며 최소한의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나,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 없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욜로가 '젊어서 노세'와 같은 단순한 충동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성향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욜로는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기 보다는, 후회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기 위한 소비를 의미한다.
'욜로'를 2017년 트렌드로 꼽은 김난도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에서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시대에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라면서 "일본의 사토리(달관) 세대는 덜 벌고 덜 쓰고 덜 일해도 행복하다며 최소한의 삶에 안주하지만 욜로족의 경우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모하더라도 도전하고 실천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이 순간을 사랑하려는 긍정 에너지를 담은 희망 주문이라는 설명이다.
욜로를 삶의 모토로 삼는 욜로족은 충동구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경험을 원한다. 단순히 물욕을 채우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상향을 실천하려고 한다.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풍요'라고 믿는다. 전세금을 빼서 1년간 세계여행에 나서거나, '포켓몬GO'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작정 속초로 떠나는 경우가 욜로적 소비에 해당한다.
'트렌드 읽어주는 남자' 김용섭 소장은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하루하루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막 살자는 것도 아니고, 대책 없이 오늘을 흥청망청 보내자는 것도 아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다 보면 내일도 충실해 질 수 있다. 오늘의 행복을 찾으면 내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 내일이 막연한 미래라면, 오늘은 구체적인 현실이다. 나는 누군가 내 삶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물으면, 늘 지금이라고 대답한다"고 말한다.
# 어차피 못 살 집, 빌린 동안이라도 잘 꾸민다
기성세대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셋집에 살면서 인테리어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홈퍼니싱(home furnishing·소품으로 집꾸미기) 열풍이 확산되면서 3040 세대는 물론이고 20대까지 세련된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세련된 공간을 경험할 기회가 늘었고, SNS를 통해서도 멋진 인테리어를 접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셀프 인테리어 혹은 여행에 열광하는 이들은 오늘의 행복을 위해 돈 쓰는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 쓰고 모으면 통장 잔고는 늘어나겠지만, 잔고가 주는 행복보다 내 공간을 꾸미거나 여행의 경험이 주는 행복이 더 크다고 여긴다.
이는 SNS의 열풍과도 연관이 있다. 하루에도 수천 개에 달하는 #방스타그램 #집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붙인 게시물이 쏟아지는 요즘, 사진을 찍어 남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세련된 공간 만들기에 욜로족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
# 고급스럽고 가치 있는 것에 투자
2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더라도 커피만큼은 로스터리한 원두로 내려 마시거나 주기적으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향초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가 주를 이루는 한편,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주저 없이 구매하는, 삶의 패러다임 또한 전체적으로 바뀌는 추세.
욜로족들은 자신의 취향이 가득한 물건을 수집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컬렉팅은 그 시작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취미활동이지만 욜로족들의 컬렉팅은 이전 세대와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모으는 물건이 희귀한 것 또는 비싼 가격대의 제품 등이 주를 이룬다. 피규어나 최고급 그릇, 향초, 빈티지 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모으는 사람들 역시 컬렉팅하는 물건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직종의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컬렉팅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지만, 자신이 즐기고 소유하는 기쁨 때문에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 것도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다.
■ 투데이족(TODAY 族) 욜로족을 대체할 수 있는 유사어.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대책 없이 막 살자는 주의가 아니라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막연히 미래에 행복이 올 거라는 뜬구름 같은 생각 대신, 구체적인 행복을 만들어가는 '오늘 주의자'를 지칭하는 신조어.
■ 픽 미 세대(PICK ME GENERATION)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통해 등장한 말로, 치열한 경쟁에서 선택의 간절함을 품고 사는 요즘의 디지털 세대를 가리킨다. 앞으로도 뽑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얼로너(ALONER) '히키코모리'와는 다르게 그저 좋아서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것을 말한다. 혼밥, 혼술은 기본, 혼놀, 혼영을 즐긴다. 얼로너들은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혼자 밥을 먹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SNS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쾌적한 환경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정적인 취미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 연휴나 주말에 먼 휴가 대신 근교의 펜션 혹은 고급 호텔에 머무르며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말한다. 비슷한 의미로 호텔과 바캉스를 결합한 '호캉스'가 있다.
일부에선 욜로족이 '현실 즐기기'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허세 소비에 빠지거나 '보여주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변질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올 들어 '있어 보이는 것도 능력'이라는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와 'Ability·능력'을 합친 것)라는 신조어가 유행하자 이들의 과시 소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의 경우 한 P2P 대출업체가 지난 9월 욜로족 1000명(18~30세)을 대상으로 '저축·투자 여부'를 묻자 전체 60%가 "미래 대비 없이 모두 쓴다"고 답변했고, 자연스럽게 비난이 일었다. 몇몇 해외 매체들은 '클루리스(clueless·멍청한) 세대'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에 대해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최근 "욜로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돈의 가치에 대해 무지한 게 아니라 금리가 바닥이고 주택 역시 투자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가장 현실적으로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케팅 전문가 이장우 박사는 "기회나 일자리도 점점 줄어들어 더 이상 A급 정답 같은 인생만 있는 것이 아닌 요즘, '욜로 라이프'는 과거라면 B급이었을 인생에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해 A급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민정(경기도 고양시 덕양구·27세)는 욜로도 불투명한 미래에 좌절한 청춘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를 즐기자는 인식은 결국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 같아요. 개미보다는 베짱이가 차라리 낫다는 거죠. 과거에는 지금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나중에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믿음이 거의 사라진 사회가 되어버렸잖아요."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직장인 이찬미(금천구 가산동·30세)씨는 "일본에도 '프리터(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신조어)’족 처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젊은층이 문제잖아요. 미래를 준비하는게 허무해진 거죠. 아등바등 살아봤자 다 거기서 거기란 거죠"라고 말했다.
대학생 강현우(양천구 신월동·27세)는 "기준금리가 물가상승률도 못따라가는 상황에 저축은 큰 의미가 없잖아요. 돈을 모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어진 거죠. 이런 상황에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수도권 대부분의 가구가 빚을 빚을 떠안고 있으니, 돈을 모을 수 있을리가 없죠"라고 말했다.
욜로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직장인 신채윤(강남구 신사동·29세)씨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욜로족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욜로라는 개념은 예쁜 포장지로 덮어버린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카르페 디엠'이란 말이 수십년전부터 존재했잖아요. 열심히 모아봤자 집한채 마련하기 어렵잖아요. 그러다보니 아끼기보다는 그냥 쓰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인 거죠. 결국 욜로는 일종의 현실 도피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