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6번〉은 작곡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는 기대를 할 만큼 이 작품은 가장 유명하고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August 15, 1893: Tchaikovsky was able to send his nephew a follow-up report:
The symphony . . . is progressing. I am very pleased with what is in it, but I am not completely satisfied with the orchestration. It seems to take shape not quite as I had imagined. I shouldn't be surprised if my symphony gets abusive notices and little appreciation; I am used to this. But I am confident in considering it the best and, above all, the "most genuinely sincere" of all my works. I love it as I have never loved any of my other musical offspring.
Among the lyric and dramatic elements of the first movement, Tchaikovsky quotes a motif from the Russian Orthodox service for the dead.
2008. 02. 11.20160403challea5913
교향곡6번‘비창’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Symphony No. 6 Pathétique in b minor Op.74
차이콥스키가 인정한 최고의 작품
〈교향곡 5번〉 작곡 이후 차이콥스키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E♭조 교향곡〉을 구상하였지만 이 작품을 참아내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Vladimir Davydov, 1871–1906)에게 “이 작품은 흥미나 동정, 그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다”고 쓰고 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893년, 차이콥스키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였다. 그는 모데스트에게 “나는 지금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이 작품과 나를 떼어낼 수가 없다. 나는 이 작품이 나의 작품 중 최고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쓰며 〈교향곡 6번〉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작곡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는 기대를 한 만큼 이 작품은 가장 유명하고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6번〉 초연 9일 후 세상을 뜨면서,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대작으로 남게 되었다.
‘비창’의 탄생
이 작품은 ‘비창(悲愴)’이란 제목으로 표제 음악적 성향을 가졌으나 정확히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작곡가 스스로가 〈교향곡 6번〉의 표제로 알려지는 것을 꺼린 것 같다. 표제는 동생 모데스트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표제에 대해 모데스트에게 상담을 했고, 모데스트는 러시아 제목 〈Патетическая〉(파데티체스카야)를 제안한다. 이 단어는 ‘열정’이나 ‘감정적’이란 의미지만, ‘연민’은 아니다. 동시에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러시아 제목은 교향곡의 초판본에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프랑스 번역어 〈Pathétique〉(빠떼띠크, 비장한, 감동적인)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숨겨진 표제, ‘작곡가의 초상’
작곡가가 의도한 ‘비창’의 표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제목에서 작품의 표제가 고뇌나 슬픔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음악학자 타루스킨은 ‘비창’을 “자살 노트”에 비유한다. 이러한 해석은 페테르부르크에서 2번째 공연을 했을 때부터 주장한 것이다. 차이콥스키 사후에 이뤄진 이 연주회에서 청중은 불길한 징후를 느끼며 작품을 힘들게 감상하였다고 한다. 사실 작품 초연 후 9일만의 차이콥스키의 죽음은 청중들에게 마치 장송곡과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음악학자 데이비드 브라운은 〈교향곡 6번 ‘비창’〉을 삶과 죽음에 대한 운명의 힘과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차이콥스키가 ‘운명’을 여러 번 언급한 〈교향곡 4번〉과 〈5번〉뿐 아니라 미완성 〈E♭ 교향곡〉에서도 동일한 표제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차이콥스키가 ‘운명’ 주제를 여러 번 언급한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불행한 생애와 급작스런 죽음과 관련한 해석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차이콥스키가 살았던 시대는 재정 러시아의 말기로 극심한 혼란기였다. 차이콥스키는 14세 때 어머니를 여의며,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고 우울증의 원인으로 그의 성 정체성을 원인으로 보기도 하였는데, 특히 그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결혼은 차이콥스키의 우울증을 극도로 악화시키며 자살기도에 이르게 하였다. 이러한 그의 불행한 생애와 갑작스런 죽음은 ‘비창’의 웅장하면서도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와 이상할 정도로 잘 맞닿아 있어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1893년 차이콥스키 장례식에 모인 군중들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바순의 선율로 시작한다. 탄식하는 듯, 주저하는 듯한 우울한 선율은 점차 격렬해지며, 불안, 초조함을 나타낸다. 음악이 진행하는 중간에 등장하는 춤곡풍의 리듬이 경쾌하며 발랄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슬프며 쓸쓸한 느낌이다.
2악장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
1악장과 비교할 때 템포가 빠르고 경쾌하다. 그러나 숨 쉴 틈 없이 계속 몰아치는 선율이 불안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타란텔라 주제’로도 불리는 3악장의 주제는 스케르초의 활발하고 장난스러운 느낌을 준다.
4악장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 – 안단테
전 악장을 통틀어 가장 어둡고 무거운 악장이다. 일반적으로 4악장은 가장 빠른 작품이나, ‘비창’은 느린 선율로 비통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차이콥스키 자필 악보에는 4악장의 템포가 안단테라고 되어 있지만, 차이콥스키의 죽음 이후 추도 연주회에서 지휘자 나프라브니크(Eduard Napravnik, 1839~1916)가 아다지오로 연주하면서 아다지오로 굳어졌다고 한다.
- Gergiev is truly a great conductor. He performs this symphony like it is a Mahler symphony -- all the gratas it deserves. Tchaikovsky had to wait over a hundred years to get the performance he deserved.
- Outstanding....formidable. Gergiev is magnifi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