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음악 감상가들은 이 곡을 실연한 사람의 애절한 감정을 잘 표현한 곡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안다.
그러나 이 유샤인은 짝사랑도 해볼 만큼 해본 사람이기에 이 곡을 좀 색다르게 이해한다.
원래 작곡가가 이 곡을 "알함브라의 풍"이라고 지었고 부제로 "기도"라고 했던 것을 출판사에서 상업적인 판단에서 "알함브라의 추억"이라고 고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 유샤인이 이해하기로는 작곡가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구조와 그 궁정을 짓기까지의 역사며 마지막 모슬렘 왕이 왜 그 궁전을 싸움도 하지 않고 평화로이 내놓고 자신은 아프리카로 홀연히 떠났는가를 명상하면서 그의 마음을 기도하는 자세로 그 궁정을 새롭게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 궁전이 전쟁에서 파괴되는것을 보지않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왕의 마음을 그는 그 당시에 그가 느끼던 실연의 감정에서 절실히 공감하게 된게 아닌가 보고싶다. 그 자신도 그 왕과 같이 그 동안 앓아온 실연의 아픔을 이겨 내고 그 궁전의 아름다움을 그토록 사랑한 왕의 뜻을 따라 자기도 자기가 사랑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전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자기가 사랑한 아름다운 대상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지어낸 곡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우리 삶에서 고통은 우리가 현실을 초월하여 더 나은 고차원의 세계로 지향하게끔 창조자는 일부러 우리 인간들이 고통을 겪게 하신다고 그가 적어 주신 책에서 알려 주신다. 이 작곡가도 실연의 아픔을 통해서 저 아름다운 궁전을 보전하기 위해서 평화로이 자기의 왕권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떠난 왕처럼 자기도 자기가 짝사랑한 여인을 위해서 아픔을 견디어 내겠다는 다짐에서 자신이 사랑한 그 대상을 찬양하는 노래로, 자신도 더 고상한 차원의 세계로 지향하겠다는 기도로서 이 노래를 지은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YouShine@youshine.com 유샤인
" Greater love hath no man than this, that a man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친구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더 큰 사랑은 없다." - 요한복음 John 15:13
아래 동영상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Juian Bream의 연주는 여지껏 보아 온 중에 이 곡 연주의 극치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