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난공불락의 제로센을 물리친 발상의 전환
적의 약점 나의 강점 생각을뒤집어라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기동력 앞세운 무적의 전투기 ‘日 제로센’
美 그루먼사, 상대적으로 약한 강도와 급강하 힘든 점 노려 전투기 개발
미국 한 대 떨어질 때 제로센 19대 격추… 손자병법 ‘피실격허’ 작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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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것은 1941년 크리스마스 때다. 이 시기 일본의 최정예 전투기 ‘제로센’은 거의 무적이었다. 당시 공중전은 전투기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적기의 꼬리를 물고 사격을 하면 적기가 격추되는 그런 패턴이었다. 운동성이 좋은 전투기가 가장 좋은 전투기였다. 당시 제로센이 그랬다.
☞ 제로센은...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로 가미카제(자살공격)에 이용된 기종이다. 제로센이란 이름은 영어의 제로(zero)와 전투기의 일본어 발음인 센토키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조종석과 연료탱크에 방탄 처리를 하지 않아 가벼웠으며 그 덕분에 기동력이 좋고 항속거리가 길었지만 무장을 많이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
당시 미국 내에서 해군기를 전문으로 개발하던 회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그루먼(Grumman)이었다. 그루먼사는 개전 초 자기네 F4F가 제로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적의 약점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제로센도 약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워낙 가볍게 만들다 보니까 기체 강도가 약해서 급강하를 하지 못했고, 무게를 고려해 강력한 무장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해 제로센한테 꼬리를 물리는 것은 아예 각오하고, 적의 기관총에 버틸 수 있는 기체를 만들기로 했다. 이걸 가능케 해준 건 강력한 엔진이었다. 그루먼은 당시 개발된 미국 엔진 중에서 가장 강력한 프랫 앤 휘트니사의 더블 와스프 엔진(2000마력)을 달기로 결정했다. 제로센의 2배 이상의 마력을 자랑하는 엔진이었다.
1944년 8월 31일, 드디어 첫 전투가 벌어졌고 결과는 놀라웠다. 미 전투기는 제로센에 꼬리가 잡혀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었고, 제로센이 붙으면 특유의 강력한 엔진을 이용해 급상승하거나 급하강해 쉽게 따돌렸다. 그리고 최대로 가까이 붙어서 집중사격을 하는 소위 ‘히트 앤 런’ 작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제로센은 그다음부터 미 전투기의 먹잇감이 됐다. 미 전투기 한 대가 격추될 때 제로센은 19기가 떨어졌다. 19 대 1, 이 기적 같은 얘기는 바로 손자병법 ‘허실’편에서 말하는 ‘피실격허(避實擊虛)’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의 실질적이고 강한 면을 피하고 적의 약점을 치라는 원칙에 아주 충실한 결과인 것이다. 만약에 그루먼사가 자사 전투기의 운동성을 가지고 제로센에 대적했다면 이런 결과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경영 사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할리 데이비드슨이라는 오토바이 회사다. 1907년 창업한 이 회사는 1·2차 대전 당시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전쟁용 오토바이를 생산했다. 1950~60년대에는 할리 데이비드슨이 시장을 거의 독점했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상황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이 대형 오토바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혼다·가와사키·야마하 같은 성능 좋은 오토바이 제품이 할리 데이비드슨보다 1000달러 가까이 싼 가격에 양산됐다.
1980년대 초 당시 할리 데이비드슨의 최고경영자였던 봄 빌스가 모회사로부터 이 회사를 사버렸다. 그리고 처음 한 일이 회사와 제품의 강·약점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일본 오토바이하고 비교해 보니 품질도, 성능도, 연비도 모두 떨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경영진이 내린 결론은 ‘미국적인 것을 팔자’였다. 소련과의 신(新)냉전 시대, 그리고 복고풍 열풍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디자인을 복고풍으로 잡았다. 현대식으로 따라가기보다는 1930~40년대 오토바이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딜러 수를 3분의 1로 줄여버렸다. 너무 흔해지면 싸 보인다는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딜러 수를 줄이다 보니 사람들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몇 개월을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오토바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이런 전략 끝에 얼마 안 있어 정상화됐고, 수익이 나날이 증가해 주가도 엄청 오르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 기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적의 강점을 따라잡으려고만 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적에게 없는 것, 미국의 감성과 문화를 팔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상대의 강점 때문에 고민 중이라면 ‘피실격허’의 교훈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김경원 교수/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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