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망산이 어찌 의자왕에게만 해당되는 곳이라더냐
의자왕 20년(서기 660) 6월 한 귀신이 궁궐 안에 들어와서 큰소리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하고 외치다가 곧 땅 속으로 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임금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땅을 파헤쳤더니, 석 자쯤 깊이에서 한 거북이가 나왔는데 그 등에 '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
신라는 떠오르는 초생달로 그 위세가 더 커진다." 라는 답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왕이 노하여 무당을 죽이고 다른 이에게 다시 물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무리수를 둘 것인가!!! 생각해보건대 우리나라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차츰 쇠약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는 정 반대의 답을 하게 된다.
절체절명에 몰린 서로가 서로를 위해 순간에 거래를 택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정무감각 뛰어난 신하 덕에 듣고 싶은 얘기를 들은 왕은 기뻐하였고, 신하는 목숨을 보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수레는 백제멸망이란 화마를 싫고 사비를 향하고 있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5월 24일 경주를 출발 경산과 대구를 경유해 낙동강을 건너 상주 금돌성과 보은 삼년산성 등에 본진을 대기시키고 있었던 차이다.
700여년의 화려한 역사를 뒤로하며 저물어 가고 있었다. 기포벌과 탄현에서 막으라는 성충과 흥수에 충언을 실행해 볼 시간도 여지도 없이 당나라 소정방은 기포벌에 닿았고 김유신은 탄현을 지나 7월 8일 계백과 황산벌에서 조우를 하게 된다. 결국 7월 10일 계백은 4번의 승리에도 백제를 지켜내지 못하고 전사하게 되고, 의자왕은 웅진성을 나와 나당연합군에게 맥없이 항복을 하고 만다.
당나라 장안으로 향하였고, 당 고종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그는 며칠 뒤 여독과 탄식으로 생을 마감하며 낙양의 북망산에 묻히게 된다. 바로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으로 시작하는 '성주풀이'의 노래가사가 가리키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갈등”이란 상징이 없어지는 것도, 참여정부시절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좌절과 분노가 가려지는 것도 아니다. 반성 할 줄 모르는 지도자에게 어찌 미래가 있어, 국 민의 아픔을 알고 청년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 같이 노가대나하는 사람이 어떤 통찰력이 있어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같은 형국이라면 누구도 전부가 아닌 전무가 될 수 있는 위기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고 장담 할 수만은 없다. 서둘러 각자 자신의 내적 위기를 정리해 두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명운을 건 결전이 시작 될 때 그것을 해쳐나갈 동력을 기대 할 수 있을까. 북망산이 어찌 백제 의자왕에게만 해당되는 곳이라더냐.[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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